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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무지 거창하지만, 이 근대적 학문들 속에서도 그저 나는 법학과 경제학에 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주 근대적인 두 학문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어떤 틀 들을 가지고 있다. 법학은 각 법전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있고, 경제학은 경제학 학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있다. 이 상이한 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컨셉은 세상의 단순화를 통해 세상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단순화를 통해서 이들이 하는 작업이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두 학문에서 중요한 것은 기존에 벌어졌던 일들을 학문적 틀안으로 포섭하는 것이다. (혹은 벌어질지도 모를 일들을 포섭하기도 한다) 이러한 '포섭'에 관하여 근대적인 사고 방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러한 '포섭'방식이 매우 명료하며 어떤 흔들리지 않는 사실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힘을 통해서 우리는 수많은 근대적인 사업들을 벌여왔고, 이러한 학문들이 거기에 큰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기는 하다.
이러한 '포섭'의 학문들이 가진 힘은 대단하지만, 이 포섭의 법칙들이 도그마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물론 이는 다들 아는 이야기이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이기도 하다. 그래서 '잔소리'인지도 모른다.(수많은 포스트 모더니즘, 카오스계의 이야기 들은 이러한 잔소리의 반복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의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끊임없이 잘못될 수 있는 염려에 대해서 경고를 하니까) 이러한 '잔소리'를 계속해서 상기시키지 않는다면 법학, 경제학 등의 학문을 전공해서 어느 정도의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은 항상 이 분야 비전공자들을 답답하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왜 이 당연한 원칙들, 법칙들을 모르는 걸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이것이 이러한 학문들을 강의식으로, 도그마로 받아들인 폐해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시험에 붙자고 공부하면 이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고시생이었던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는 하다) 법학 전공자들이 흔히 논증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법조문 열거하기 이다. 심지어는 어느 법학 교과서에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 이게 옳은게 아닐까라고 주자하기도 한다. 굳이 일상생활에서 논증을 해가면서 살 필요는 없기에 이미 논증 작업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활자화 된 매체들에 의존해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생각은 활자로 이미 표현되고 나면 왠지 권위가 있어보이는 착각이 든다) 법학도들의 글에는 이렇게 실질적인 논증이 없는 논거들기 현상이 나타나기 쉽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촛불 집회를 비판하어떤 이의 신문 사설에 질서를 지켜야 하는 이유의 논증과정에서 '법학 교과서를 들춰봤더니 질서에 관한 이야기가 있더라, 이런 당연한 걸 왜 안지키나. 원칙에 충실하자'라는 식의 논리는 전개한 경우를 본 적이 있다. 이는 고시생들이 신성시 하는 교과서(교과서 위주의 법학은 우리나라 특유의 현상인 것으로 알고 있다)를 한번이라도 들춰보면 알 수 있는 거라는 식의 논증이다. 그렇지만, 이 교과서 안에도 별다른 논증이 없는 거라면? 다만 동어 반복적인 논증에 불과하다면 이 글이 가진 힘은 반감되는 것이 아닌가. 경제학 전공자들 역시 이러한 편의에 빠지기 쉬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주요한 무기는 '수학'이다. 수학으로 논증된 것이니 더 이상 여기에 토를 달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 전공자들이 경제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는 부정확성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가한다. 하지만, 경제학이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전제를 깔고 수학적인 수식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음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수학적인 천재가 증명해 낸것이라도 전제를 통해서 많은 변수들을 제거하고 증명해낸 공식이라면 그 공식이 수행할 수 있는 포섭의 범위는 매우 한정될 수 있음을 한번 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근대적 학문인 법학, 경제학이 힘을 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수많은 논증과 변수를 생략한 포섭에 기반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학문들의 발명은 사람들로 하여금 중요한 변수에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의 세상살이를 빠른 시간 안에 설명해 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빠른 시간안에 설명해내고, 거기서 찾은 어떤 법칙들의 컨텐츠가 많다고 해서 이들이 사회학, 문학 등보다 세상에 훨씬 큰 공헌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분명, 법학도인 내가 보기에도 법학, 경제학은 사회 분야의 미시적인 부분들에까지 많은 설명을 해내고 있기 때문에, 고발의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사회학, 철학, 문학에 비해서는 컨텐츠가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후자는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자본주의 비판, 타자에 대한 배려 등등.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학문의 기능적인 역할이다. 내가 느끼기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될 수 있으면 세상을 객관적으로 포섭하는데에도 집중해야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인 포섭에서 조금만 더 인간적인 영역으로 방향을 틀어서 무게중심을 두어야 연구 해야 한다. 앞서서도 이야기 했지만, 어차피 근대성을 띈 학문들이 세상을 포섭한다는 객관적인 틀 자체에 효율성을 위해서 기술적으로 생략한 많은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학문을 수행하는 돈의 대부분은 국가적 기구나, 대기업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에 정확하게 그것이 객관적으로 수행되지 않는 측면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생각을 음모론의 규정하는 사람도 많음을 안다) 따라서, 이들이 다른 사회과학, 인문학에 비해서 좀 더 많은 일들을 수행한다고 해서 이 학문들의 이야기를 멀리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수업을 들은 바로는 많은 법학 교수님들께서는 세상을 문제를 당장 설명해 내지 못하는 인문학에 대해서 많은 회의를 가지고 있었다. 철학의 근본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신 교수님도 있었다. 이러한 태도가 고시 공부를 하느라 현실적으로 여타 사회과학,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교수님들의 시간적인 한계에서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라고 선해하고 싶다. 나 역시 고시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객관성을 표방하는 와중에 이러한 학문들이 사회적 강자의 발언권을 암암리에 강화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반면에 사회에서 상대적인 피해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약간 뻥튀겨서 강조해 주는 역할을 인문학이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강자와 대중에게 이러한 문제점이 있음을 모습을 바꿔가며 계속 환기시키는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은 이러한 면에서 컨텐츠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고, 끊임없이 우리는 불편하게 한다. 그렇지만, 이 학문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일은 분명이 중요하다. 학문이 기본적으로 진리를 추구한다할지라도, 그 객관적인 진리로 포장한 강자의 이데올로기의 전파가 만연하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인 스탠스를 약자를 향하여 잡는 것은 옳은 바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학문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좌적 편향을 취하는 것이 될 수 있으나, 좌의 냄새만 나면 비판을 서슴지 않는 법학, 경제학의 전공자들에게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약자의 이야기는 어차피 뒷받침되는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며, 좀 더 효과적인 표현법을 찾을 뿐이라는 변명이다. (이하는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말 나온 김에 서술하고자 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해서 많은 주변의 법학, 경제학도 친구들은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관해서 나는 마치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듯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비판부터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사실상 마르크스의 경제학적인 입장은 현대 경제학의 입장에서 대부분을 뒤집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 경제학의 의의를 무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이 논리적으로 논파되고 말고가 아니다. 약자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포섭하는 이데올로기가 세상에 몇이 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학문들이 객관적 학문을 이야기 하며 스스로도 모르게 주류의 이데올로기 전파를 암암리에 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문의 세계에서 발언권을 가진 교수님들이 사회적인 주류이다. 이러한 면에서 마르크스의 계급론은 맞는 측면이 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스탠스를 약자를 향해 잡지 않는 이상,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유리한 강자 편승에의 논리가 나의 신체를 통해서 관철되는 것이다. 이제는 글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독서량도 많지 않은 일개 로스쿨 대학원생의 입장이지만,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구구히 논설한 이유는 역시 잔소리를 하자는 것이다. 다 알거 같은 이야기지만 한번 더 해보자는 거다.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본인이 피곤해 질지는 모르나 실용적인 공부를 하는 와중에서도 자신이 객관적이라고 굳게 믿고 도그마처럼 받아들이는 교과서의 이야기 들을 한번쯤은 의심해 보자는 것이다. 저명한 학자들이 수학으로 증명해낸 대단한 원리라도 한 번쯤 의심해 보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서서히 수많은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시대에 공부 좀 했다는 사람들이 객관성을 표방하며 '은연 중에' 강자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것. 주의해야 할 점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누군가 읽지는 않을 것 같은 장문의 블로그 글이다. 언젠가는 정리해서 이름 있는 오피니언 사이트에 올려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의 나는 치열한 입시 세계의 정점에 서는 행운을 맛보기 위한 오랜 수도승의 고행 끝에 논술이라는 것을 거의 생애 처음 해보려고 논술 학원에 등록했다. 우한기라는 당시 광주에서 유명했던 논술 강사를 만나기 전에는 오로지 나에게 있어서 지적인 능력의 전부는 영어와 수학, 사탐 정도였던 것 같다. 읽은 책이라고는 학교 선생님들이 권해주었던 책 몇권이 전부, 써 본 글이라고는 수상 실적을 늘리기 위해 참여했던 안보 글쓰기 대회에서 써본 글 정도가 고작 이었다. 이런 나에게 독서 깨나 해보았다는 이 논술 강사의 강의는 나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충격 속에서 논술 강사가 누누히 강조했던 말은 대학생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거였다. 유명한 학부 유명한 과를 간다해서 테크니컬한 공부만 하지 말고 책을 꼭 읽으시라고 했던 말이 뇌리에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이러한 충고에 대하여 내가 했던 생각은 그냥 '까이꺼 하면 되지'였다. 까이꺼 해서, 여느 대학생과는 다른 포스를 한번 풍겨보자는게 나의 생각이었다. 이어지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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